2024-08-27

72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 10:16~17)

로마서 10장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믿음은, 들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듣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가 살아계심을 깨우치기 위해, 그의 사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선지자와 사도들이며, [구세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 중 맏아들 예수를 중심으로 선지자와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롬 8:29)


로마서 8장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יהוה)께서는 그의 아들들을 세상에 보내시되 연약한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게 하였다.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니,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 이 같은 능력은 성령의 권능으로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았지만, 성령에 힘입어 여호와(יהוה)의 말씀을 담대히 증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사자들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 사도들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세상에 증언한다. 이를 로고스(λόγος)라 말씀한다.
로고스(λόγος)는 성령의 은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가 여호와(יהוה)의 우편에서 다스리게 됨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일곱 영)을 온 땅에 보내신다.(계 5:6)


요한계시록 5장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그러므로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성령에 힘입어 사역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יהוה)의 우편에서 다스리기 전에는, 여호와(יהוה)께서 세상을 친히 다스리셨다.
그러므로 여호와(יהוה)께서는 그의 사자 아브라함을 만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모세를 만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셨다.(출 3:1~8)


출애굽기 3장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그러나 여호와(יהוה)의 맏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신 후로는, 마지막 날까지 예수를 그의 우편에서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이후로는,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권능을 행하였다.(행 3:6~10)


사도행전 3장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바울(사울)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믿음이 온전하게 변화되었다.(행 9:1~9)


사도행전 9장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 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이와 같이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증언하였다.
그러나 달란트 받은 종들은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증언한 로고스(λόγος)의 말씀을 듣고서, 이를 다시 세상에 증언한다. 이를 레마(ῥῆμα)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께 직접 받은 성령의 말씀이냐, 아니면 성령의 말씀을 듣고 제삼자에게 다시 증언하는 달란트의 말씀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은사와 달란트의 재능은 전달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뜻이다.
성령의 은사로 사역하는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는다.(요 5:27, 마 19:28, 계 20:4)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한 성령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말씀이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나 달란트의 재능으로 사역하는 세상 사람들은, 심판의 날 정죄함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마 25:14~46)
달란트의 재능은 세상 사람들의 능력이므로, 세월의 흐름을 타고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יהוה) 하나님께 받은 성령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성령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이사야 선지자는 한탄하듯이 부르짖었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그렇다.
아무리 성령의 말씀을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고, 깨닫지 못하면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듣고 깨달아야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이 되는 말씀이라도 들어야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토록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는 성서를 통해 증거 되는 시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사람의 뜻으로 가감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경은, 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금씩 변질되고 변개된 부분이 있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으로 가르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뜻으로 가르치는 말씀을, 대언의 영이라고 말한다면, 로고스(λόγος)가 레마(ῥῆμα)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질되었다는 뜻이 된다.


오늘날까지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은, 전체적으로는 온전하게 전수되어 왔다. 그러나 일부분이 조금씩 변질되었을 뿐,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생명이 되는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2024. 8. 2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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