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케드(שקד)

2024-11-20

784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 29:10~11)

역대상 29장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하나님께 감동의 찬송을 드리는 자,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아는 자이다.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יהוה) 하나님께 송축하기를,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 참으로 감명 깊은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만물의 이치를 살펴보니, 감동이 샘솟듯 일어났다.


산천은 아름답고, 지저귀는 새소리는 여호와
(יהוה)를 찬양하는 노래가 되었다.
깊은 숲 속에서 흐르는 샘물은 졸졸졸 노래하고, 이름 모를 꽃들도 산들바람을 타고, 온몸을 흔들며 찬양한다.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미소가,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향한 화답의 소리로 들린다.
백성들은 일터에서 삶을 찾고, 추수 때에 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환호였으리라.


얼마나 기쁘고 감동되었을까?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는 다윗 왕!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찬양의 노래이다.


지난날의 고통이, 오늘의 기쁨을 더하였으리라.
도망 다니고 쫓기던 시절,
고난과 역경의 흔적이, 기쁨의 찬송으로 변하였으리라.
깊은 갈증을 체험한 자가, 생수의 참맛을 느끼듯, 지난날의 고통을 경험한 자가 행복의 깊이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이 이토록 감명 깊은 찬양을 할 수 있는 것은, 위기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종 다윗을,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
사울 왕 앞에서 쫓기던 시절, 숨어 다닐 때마다 늘 지켜 보호하셨다.


여호와(יהוה)의 위대하심과 그의 권능을 아는 자 누구인가?
다윗은 여호와(יהוה)의 권능을 많이 체험한 선지자이다.
작은 물맷돌 하나가 여호와(יהוה)의 권능에 붙들리니,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되었다.
골리앗에 비하면, 비록 작은 체격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에 붙들리면, 홍해가 갈라지는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여호와(יהוה)의 권능에 붙들린 자들,
그들은 담대하리라.
여호와(יהוה)께서는 그의 사자들에게 굳건한 믿음과 힘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수 1:9, 사 41:10)


여호수아 1장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1장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온전히 경험한 자.
그는 다윗 왕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향한 감명 깊은 찬양으로 이같이 고백하였다.


"여호와(יהוה)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가 되시옵나이다."


2024. 11. 20. 솨케드(שקד)

2024-11-19

783 형제들아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고전 14:20~25)

고린도전서 14장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사도 바울은 왜, 방언을 하지 말고 예언을 하라고 말씀하였을까?
아마도 교회가 방언으로 인하여 어지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어지럽다는 것은, 성령의 뜻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방언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나는데,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들이 없음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언하는 사람들을 거짓이라고 말한다면, 방언을 하고 있는 자신도 거짓이 됨으로, 밝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와, 사람들의 뜻으로 내뱉는 거짓된 은사를 분별하기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이 같이 말씀하였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이는 오늘날 교회가 행하고 있는 방언을 살펴보아도, 알 수가 있다.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은 없는데, 모두가 방언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는, 아홉 가지가 있다.(고전 12:9~10)

고린도전서 12장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사도 바울은 아홉 가지 은사들 중에 왜, 예언과 방언만을 언급하였을까?
예언은 사람들의 뜻으로 행할 수가 없다. 예언은 진실과 거짓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언은 질실과 거짓을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있다 하여도,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분별해 가면서 다스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또, 거짓을 가려낸다 하여도, 믿음의 형제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므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령의 은사란, 한 사람이 모든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은사를 통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이 균형이 어긋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탄은 이 같은 무질서로 통하여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뜻으로 행할 수가 없다. 

성령의 은사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붙들려 역사한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은, 자신들이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가 있다. 이는 성령의 권능이 아니라, 사람의 뜻으로 행하는, 거짓 방언이라는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어떻게 역사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거짓 방언을 행하는 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이 같은 지혜의 말씀을 하였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그렇다.
교회에는 지혜가 넘쳐나야 한다.
성령의 지혜가 충만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믿음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무질서한 방언으로 교회가 어지럽다면, 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한다.

진실된 믿음은 어떠한 믿음일까?
진실된 믿음은 공허하지 않는 믿음이다.
공허하지 않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확신하는 믿음이 있으면, 허공을 찌르듯 하는 공허한 믿음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로 하는 가르침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가르침의 믿음은,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숨은 일들이 드러나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참으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4. 11. 19. 솨케드(שקד)

2024-11-16

782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잠 11:24~25)

잠언 11장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구제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긍휼과 자비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다.
구제란, 세상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섬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시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행 10:1~31)


사도행전 10장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중략-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고넬료는 성령으로 난 여호와(
יהוה)의 사자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 하여,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난 자들은 복음을 듣고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섬기게 된다.
다시 말해,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사 43:1)


이사야 43장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에서와 야곱은 이삭에게서 태어났지만, 에서는 지명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지명하신 이유는, 에서는 타락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난, 육으로 난 자였고, 야곱은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난, 성령으로 난 자였기 때문이다.(요 3:6. 에녹 3서)


요한복음 3장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중략-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심을 받는다.
아브라함과 고레스 왕, 그리고 사도 바울과 고넬료가 그러하다.
고넬료는 이방 민족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셨기에, 하나님을 섬기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난 자들은, 성령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을 세상에 보내어,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죄에서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고전 1:21)


고린도전서 1장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의 생명이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구제한다.


그러나 육으로 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구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면,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저들의 생각은 육신이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멸망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한다. 이는 영생하는 새 생명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날 동안, 마음의 평안이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구제하니, 더욱 풍족해지는 것이다.
그 풍족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니, 범사가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비결을, 성령 안에서 배웠다.(빌 4:12)


빌립보서 4장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어도, 마음이 풍요하지 못하면 궁핍한 자가 된다.(잠 15:17)


잠언 15장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세상에는 기이한 일들이 많다.
흩어 구제하여도 부요하게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껴가며 살아도 가난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흩어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마음은 풍요로우나, 남의 것을 경홀히 여기는 자의 마음은 결핍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 그들에게 영생의 복과 풍요의 복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구제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와 같은 풍요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말씀의 핵심은 이러하다.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작은 것으로도 풍요함을 누린다.
풍요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웃을 윤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날 동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육신의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만을 바라보는 자들은,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다.
남의 것을 빼앗고 또 빼앗아도, 마음의 흡족함이 없다. 결핍된 마음은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웃을 병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신의 죽음 앞에서 방황하며, 갈 길을 알지 못한다.


2024. 11. 16. 솨케드(שקד)

785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17)

요나 1장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