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살펴보면 선지자들의 사명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선지자들마다 각자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 따로 있었다.
우리들은 모세와 엘리야 같은 사명을 원할 수도 있고, 예수와 베드로 같은 사명을 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사명은 우리들이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시작된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히 5:4)
히브리서 5장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모세나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에게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많은 사역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사명은 구세주의 사명이므로 일반 선지자들이 행할 수 없는 사명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 또한 예수를 닮은 사도의 사역을 이루었다.
이처럼 선지자 사도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였던 것이다.
선지자들이 예정된 자들이라면,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저들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성경말씀에 예정된 말씀이 있는가 하면, 자유의지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태초 전,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타락 천사들이었다.(에녹 3서)
타락 천사들은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은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두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라 말씀한다.(엡 2:2~3)
그러나 선지자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천사들(새벽 별들)이다.(욥 38:4~7, 계 5:6, 롬 8:3)
성경은 이들을 두고 "빛의 아들들"이라 말씀한다. 빛의 아들들은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므로 저들의 뜻대로 하나님을 거역할 수가 없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으며, 사도들이 핍박받고 죽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타락 천사들(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 없는 그의 천사들(선지자 사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온 땅에 보내시기 때문이다.(계 1:20, 롬 8:3, 에녹 3서)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보내심을 입은 자들이다.
여호와가 보내신 선지자들 중,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선지자들도 있다.
그는 호세아 선지자이다.(호 1:2)
호세아 1장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여호와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란한 죄를 깨우치게 하시려고,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음란한 창녀와 결혼하게 하셨다.
호세아 선지자도 세상에 태어나 남들처럼 좋은 가문의 여식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창녀와 결혼하는 사명을 행하게 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사명을 주신다면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을까? 이보다 더 큰 사명을 맡은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요나 선지자도 그의 백성들과 원수 관계인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겠는가?
얼마나 니느웨 백성들이 싫었으면 다시스로 도망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싫었으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으니 나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라고 하였을까?(욘 4:3)
요나 4장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는 요나의 심정을 잘 알고 계셨지만, 요나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었기에 다시스로 도망가는 그를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게 하여, 니느웨로 다시 보내신 것이다.
이처럼 선지자들은 그들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예정된 자들이었다.
그러면 선지자들은 늘 성령의 권능에 붙들려 살아가야만 하는 자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평소 때에는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상태로 살아갔다. 그러므로 실수도 행하고 불완전한 삶을 살아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처럼 죄를 음모하거나 악한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그 씨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자들은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평소 때에는, 성령의 깨우침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늘 착한 행실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요일 3:9)
요한일서 3장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자들 중에서도 때로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도중에 부르심을 받는 사자들도 있었다.
그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란, 예수의 제자들을 일컫는 호칭이다.
그러나 호칭만 다를 뿐, 선지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사자들이고,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는 예정된 자들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수레바퀴 안에서 이루어져 가는 세상 삶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선지자들은 내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고전 15:10)
고린도전서 15장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선지자들은 그들마다 세상에서 받아야 할 고난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정된 삶의 수레바퀴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롬 11:33)
하나님은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이 선지자들의 삶을 본받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사자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영생하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부 무리들은 세속 된 문화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 번쯤 선지자들의 사명을 깊이 있게 연구해 본다면, 하나님은 이토록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쓰시고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선지자의 삶을 본받는 자들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삶을 본받는 자들은 의인의 상을 받게 될 것이다.(마 10:41~42)
마태복음 10장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결론,
여호와의 사자들은 그들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창녀와도 결혼을 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는 고난을 당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사자들이 이러한 순종을 행하였을까?
선지자들은 성령으로 난 자들이다.
성령으로 난 자들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그들의 본향이 하늘에 있음을 보았다.(사 6장, 겔 1장, 계 4장) 그러므로 세상에 잠시 살면서 이루어야 할 사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밀을 깨우치기 위하여, 육으로 난 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의 본향을 이렇게 설명하였다.(마 22:30)
마태복음 22장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023. 2. 13. 솨케드(שק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