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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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2

898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딤후 2:15)

디모데후서 2장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쓰면서 이 같은 말씀을 남겼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게 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인정된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필자에게는, 증언하고픈 진리의 말씀이 간직되어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려 한다.


첫째,
어떻게 하여야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게 할 수 있을까?
진리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가르침이다.
성령의 가르침은 어디에서 받을까?
사도 바울은 진리의 말씀을 성령으로 받았다. 즉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봄으로써 깨달았다. 바울은 많을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유대교 신자였다.
유대교 역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종교이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고 있고,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는다.
사도 바울이 믿던 유대교는 그에게 생명과 같은 종교였으므로, 자신이 믿던 유대교 외에는 배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는 괴수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 지금껏 그가 믿던 진리를 다시 깨우치게 되었다.
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진리를 그릇되게 깨우친 것이다. 당시 유대교는 선지자가 없던 400년의 긴 세월 속에서 진리의 말씀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변질된 교리와 말씀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었을까?
분별하지 않고는 진리의 말씀을 깨우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깨우침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믿던 유대교를 생명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는 당대에 최고의 지식인이었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전통 있는 가문에서 자라났다.(롬 11:1, 고후 11:22, 갈 1:14, 빌 3:5~9)


로마서 11장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고린도후서 11장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갈라디아서 1장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빌립보서 3장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베냐민 지파란,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베냐민을 시조로 여기는 지파이다. 그토록 지식 있고 전통 있는 가문에서 자랐는데,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가 될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교리와 말씀이, 당시 유대교를 믿던 바울(사울)의 믿음과 유사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무엇으로 분별할 것인가?


다시 말해,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지 않고는 진리를 깨우치기 어렵지 않겠는가?
성령에 이끌려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지 않겠는가?
유대인들도 처음부터 믿음이 변질된 것이 아니었다. 약 400년간 선지자가 없는 시대를 살면서 서서히 변질된 것이다.
오늘날은 사도들이 없는 시대를 약 2,000년 넘게 살아왔다. 이토록 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씀과 교리가 변질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둘째,
하나님 앞에 인정된 자가 되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 앞에 인정된 자가 되려면 성령의 권능 안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성령으로 기름 부어 권능을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행 1:8)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의 뜻 안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어야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진리의 말씀을 겸허히 밝히고 있다.
지난날 성령에 이끌려 받은 계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밝힌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윗돌을 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증거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자는 담대할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것은, 기존의 교리와 다른 진리이다.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각자 존재하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여호와(יהוה)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יהוה)의 아들이다. 그리고 성령은 여호와(יהוה)의 영이다.
그러므로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의 영체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체가 있으며,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권능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장로들과 천사들은 각자의 영체이므로 각각 존재한다.(계 4:1~11, 5:1~7)


요한계시록 4장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장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이처럼 천사들을 다르게 표현하여 장로들, 생물들, 어린양, 일곱 영이라 하였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한 그룹들(Cherubim)과 스랍들(Seraphim)도 천사들이며 새벽 별들, 일곱 별의 비밀도 천사들을 비유한 말씀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천사들은 영체들이므로 성령 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은 영체가 아니므로 볼 수가 없다.
하늘라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새벽별 천사들)이 수없이 많다.(욥 38:4~7)
수 없이 많은 천사들 중에 예수를 [구세주] 되게 하셨다.(히 1:4~1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광명한 새벽별"이라 증언한다.(계 22:16)


필자는 이를 증언하기 위해, 많은 글을 썼다.
*
삼위일체가 아닌, "셋이 하나의 연합된 영"입니다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성령 잉태
*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
이사야 선지자가 본 하나님의 보좌 등...


예수께서는 성령 안에서 받은 계시를 깨우치게 하려고, "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말씀하셨다. (요 7:17)


요한복음 7장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필자의 증언이 사람의 생각에서 왔는지, 하나님의 계시에서 왔는지 성경을 연구하는 분이라면 깨달으실 것이다.
필자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도록 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올리고 있다.


2025. 4. 22. 솨케드(שקד)

2024-08-10

710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8)

디모데후서 4장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평생을 사도의 사명을 완수하며 살았다.
그가 감당해야 할 사도직은 참으로 힘겨웠을 것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오직 말씀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웠고, 육신의 죽음에 이르도록 가야 할 길을 달려갔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 그는 지켜야 할 믿음을 다 지켜내었다.


본문에서는 짧은 구절로 그의 신앙을 밝히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환난을 감내하였다.(고후 11:22~27)


고린도후서 11장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모든 사도들도 환란과 핍박을 당하였지만,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도 많은 계시를 받았으므로, 더 많은 고난을 받은 것이다.
그가 이토록 큰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기 때문이다.(고후 12:1~4)


고린도후서 12장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최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보았고, 하늘의 천사들도 보았다.(사 6장, 겔 1장, 계 4장)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는 비밀도 보았다.(계 1:20, 계 5:6)
그러므로 사람들의 영혼이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나는 비밀을 잘 알고 있다.(창 2:7)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달려갈 길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달려갈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광명한 새별별 천사로 돌아간 것처럼,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히 1:4~5, 13, 계 22:16, 욥 38:4~7)


히브리서 1장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중략-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요한계시록 22장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욥기 38장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크게 쓰시기 위해,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죄인의 자리에서,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도의 자리로 옮기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의 사자들을 붙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지난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살다가, 훗날에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죄를 많이 지은 자가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본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날 동안 가장 보람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것을 얻는다 하여도, 복음을 증거한 열매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보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낼 때이다.
하루의 일과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힘이 솟는 날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닐까 싶다.
필자에게도 가장 보람된 하루는, 글을 완성할 때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은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받은 계시를 다 증언할 때까지 쓰게 될 것이다.


필자가 한 가지 증언할 것이 있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받은 계시에 대한 비밀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을 살다가, 밤에 꿈을 꿀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 꾼 꿈은 현실이 아니므로 무시하든가 아니면, 참고한 후 곧 잊어버리게 된다.
꿈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도 꿈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가 있다.
이때 받은 계시의 꿈은, 일반 꿈들과 다르다.
성령 안에서 받은 계시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기 때문이다.
실상을 보게 되면, 현실이 오히려 허상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실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허상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물론, 세상에 사는 날 동안은 육신이 살아야 하므로, 육신의 삶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허상의 삶을 통하여, 실상의 나라를 사모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증언하는 그의 달려갈 길은, 세상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실상이었다.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도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허상을 본 것보다, 더 명확한 실상을 본 것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늘나라의 실상을 보았기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고 선지자와 사도들도 육신의 죽임 당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있다. 그 받은 사명을 다 이룬 후 본향으로 돌아간다.
본향에 돌아갈 때에 세속 된 열매만 남기도 돌아간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럽겠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남기고 돌아간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증언한 것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말씀하였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은, 세세토록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잠시 살다가 없어지는 허상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하늘나라의 실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실상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2024. 8. 10. 솨케드(שקד)

2024-04-28

64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

디모데후서 3장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교훈을 받아야 하고, 책망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의 영혼은 타락 천사의 생기로 지음 받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창 2:7~8, 에녹 3서)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녹 3서]
9. 종말과 재생
-중략-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그러면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들이 기록하였으므로 믿어야 한다.
선지자들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았고, 받은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입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은 어떻게 받는 것일까?
이 비밀은 사도 바울이 밝히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 안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고, 성령의 감동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였다.(고후 12:1~4)


고린도후서 12장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바울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밝히면서 무익하다고 말씀하였다.
왜일까?
이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므로 무익한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진리의 말씀은 밝혀야 하였기에 부득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비밀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가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초기까지 역사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입은 예수와 사도들도, 성령의 감동을 입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까지 전파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오늘날 성경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그의 사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해석하도록 하셨을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은 선진들의 믿음을 본받아서 달란트의 재능으로 말씀을 배워서 성경을 해석하도록 하였다.


그러면 언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까?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오래전, 구약시대 때부터 있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신비할 만큼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우리들은 달란트의 재능으로 성경말씀을 배울 수 있고, 육신의 감동으로 성경말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는 영적 감동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강산을 보고 감동하는 육신의 감동과, 성령의 권능 안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는 영적 감동과는 다른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는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도 성령의 감동을 늘 받은 것이 아니었다.
평소 때에는 육신의 재능으로 사역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성령이 처음 임하신 것은 30세 때에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후이다.
침례를 받은 후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마 3:16~17)


마태복음 3장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리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예루살렘 지역부터 복음을 전파하셨고,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평소 때에는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상태로 사역하셨다.(요 7:39)


요한복음 7장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런데 오늘날은 성령의 권능을 알 수 없으니, 저들의 생각으로 성경말씀을 해석하고 번역하여 여러 곳이 변질되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성령의 권능을 입은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말씀을 증언하였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후로부터는 달란트 받은 종들이 육신의 재능으로 사역하게 하였다.(마 25:14~46)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해석하든지 아니면, 달란트 받은 종들이 성령의 가르침을 변개하지 않고 올바르게 해석하여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말씀을 세속적인 지식으로 해석하고 번역하여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세속 된 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옳게 여김을 받을지 모르나,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릇된 해석이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성령의 감동을 입은 자들의 무리보다, 세속 된 자들의 무리가 훨씬 많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곧, 유대 지도자들은 많은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예수와 제자들은 적은 무리들이었다.
적은 무리들은 큰 무리들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들은 큰 무리들 앞에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적은 무리들의 해석이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그 해석이 성령의 감동을 입은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성령의 감동을 입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과 율법을 배우고 익힌 훌륭한 지도자가 그릇된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영적인 감동을 입은 자가 아니면,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붙드시는 그의 사자들을 통해 그의 말씀을 해석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선지자와 사도들처럼 성령의 권능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본 영적 감동을 입은 지도자가 있을까?
성령의 감동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역사할 때 받는 감동이다.
오늘날은 육신의 재능으로 각자의 소리를 내는 시대이다.
성경 해석도 각자가 받은 달란트의 재능으로 해석하는 시대이다.
이쪽 말씀을 들으면 이쪽 말씀이 옳은 것 같고, 저쪽 말씀을 들으면 저쪽 말씀이 옳은 것 같다.
이는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성경 해석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께서도 평소 때에는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상태에서 사역하셨다.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으셨기에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고, 핍박과 조롱을 받으셨던 것이다.
성령의 권능이 역사할 때에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헤칠 수 없기 때문이다.(마 10:29~30)


약 400년간 선지자가 없던 시대에, 세상은 크게 부패하였다.
그러면 오늘날은 약 2,000년 동안 선지자(사도)가 없었으니 얼마나 부패하였을까?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셨다.(눅 18:8)


누가복음 18장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믿음 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는 경종의 말씀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을 본 자도 성령의 말씀을 증언할 뿐, 부패한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운데, 하늘나라의 비밀을 못 본 자들은 오죽할까?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 자신이 믿고 있는 유대교를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집요하게 박해하였던 것이다.
사탄은 사람들의 믿음을 이토록 무력화시키고 세속화시키는 것이다.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것은, 사탄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들은 사탄의 미혹 때문에,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그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세상이 사탄의 감동을 입고서 성경을 그릇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사도들)의 정체성과,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데서 비롯된 해석 때문이 아닐까?
즉, 사람들의 영혼은 태초 전 천사들이었다는 비밀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중략-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성령의 권능에 붙들린 흔적 안에서 받은 영적 감동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감동이라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2024. 4. 28. 솨케드(שקד)

2023-08-23

450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디모데후서 2장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사도 바울은 면류관을 받으려면 "법대로 경기하라."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법은 세상 지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요, 세상 지혜로 배운 것도 아니었다.(갈 1:12)

갈라디아서 1장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법은,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또 성령의 권능에 이끌려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배운 성령의 법이다.(고후 12:2~4)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 법은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이 만드셨다.
여호와(יהוה)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성령의 법을 가르치게 하였고, 마지막에는 그의 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어 성령의 법을 실천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를 증언하도록 사도들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법은 세상 사람들의 지식이나 지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이미 성령의 법 아래에 놓여 있다.
우리들은 성령의 법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 때에는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서 인생을 마감하였고, 율법 안에서 죄의 삯을 치른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세상은 날로 발전하고 변천하였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변천하였다.
하나님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을 실천함에 있어서 시험이 들 때를 아시고, 피할 길을 내어주셨다.
피할 길을 내어주신 법이, 곧 율법을 폐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때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율법이 완성되도록 길을 여셨다.
복잡하고 다양한 율례와 규례들을 모두 없애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하였다.(롬 10:9~10)

이 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 아니라, 마음속에 감추어진 법이다.
예배도 성전에서 드리는 형식적 예배가 아니라, 사람의 몸이 성전 되게 하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진실한 마음의 법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합당한 예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


오늘날은 삶의 문화는 크게 변천하여, 주일도 없이 일하게 만드는 시대이다.
사탄은 세상 문화를 통해 구원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한 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일을 기억하고 마음의 예배를 드린다.
이는 마치,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단 6:10)

다니엘 6장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온전한 자는 아무리 세상 문화가 우상을 섬기게 만들어도,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그리고 직업을 통해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만들어도, 그들의 믿음은 식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간절한 예배를 원하게 된다.
아니, 한 달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그들의 믿음은 식지 않고 날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세상 풍조에 휩싸여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될 것이다.(마 13:3~8)
사탄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사탄의 어떠한 공격에도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믿음에는 법칙이 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법은,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는 법이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 세상 지혜를 따르고 있는 것이지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교회를 치리하는 과정에서 본을 보이기보다, 세상 조직과 풍조를 앞세울 때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 성령의 법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풍조와 세상 문화를 가미시켜 가르치려 한다.
다시 말해, 신비한 능력을 보여서 성도들을 모으려 한다.

특히, 어느 한 교회가 성도들을 많이 모으는 능력을 발휘하면, 그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많은 지도자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성령의 법이라면,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지만, 불법이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 7:22~23)

마태복음 7장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진실한 자들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된 자들은 남이 모른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속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므로, 그 사람의 거짓을 징계하시는 것이다.

지도자는 성령의 가르침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도가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주어진 말씀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모이기 좋은 프로그램 등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 방법이 성령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방언이, 진실로 성령에 의한 가르침인가?
당시 사도들이 사역할 때에도 성령의 은사는, 몇 명만을 세우셨다.(고전 12:28)
그러나 오늘날은 수없이 많은 자들이 방언을 한다.
그 방언이 성령의 권능으로 받은 것인지, 세상 지식으로 배운 것인지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면, 오늘날은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는 시대가 아니라, 달란트의 재능으로 사역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므로, 홍해를 가르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
또,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한 하나님의 사자들은, 마지막 날 성령의 권능을 입고 나타나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요 5:27, 마 19:28, 계 20:4)

그러나 달란트의 재능으로 사역하는 자들은,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즉 순종의 열매를 맺으면, 그 열매를 가지고 마지막 심판의 날, 정죄함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마 25:17~46)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받은 자들은, 태초 전 여호와(יהוה)의 천사들이었다.(욥 38:4~7)
여호와(יהוה)의 천사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자들이다.(히 1:4~5, 계 1:20, 계 5:6, 에녹 3서)
이는 타락 천사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사도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사탄을 에덴으로 옮겨놓은 두 천사는 다시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때 다른 천사가 에노스펠(에녹)에게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부르신다고.
그러자 라구엘은 에노스펠(에녹)의 두 손을 잡으며 헤어지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좀 더 영원한 시간에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맹세했다.
비록 사탄과는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에노스펠(에녹)은 라구엘과 결별을 청한 후 지고산의 아래로 올라갔다.
그곳엔 이미 선택받은 수백 명의 천사들이 엎드려 있었다.
에노스펠(에녹)도 그들의 뒤에 앉아 엎드렸다.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타락 천사들은 태초 전, 여호와(יהוה)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난 천사들이다.
성경은 이들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라 말씀한다.(엡 2:2~3)

에베소서 2장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세상을 유혹하는 사탄은, 지금도 우는 사자같이, 구원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
구원의 길, 곧 성령의 법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여야,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3. 8. 23. 솨케드(שקד)

2023-01-22

306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5)

디모데후서 4장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 권장의 말씀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후계자로 사역할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양성하는 것이다.

첫째,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 말씀하였다.

"하나님 앞"이란?
한 분의 하나님, 곧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이란?
여호와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 구세주로 보내심을 입은 그의 아들 예수를 말씀한다.

그리고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마지막 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 경고하는 말씀이다.
심판의 날은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하였다.(막 9:47~49)

마가복음 9장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빼버려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심판의 날, 그때 살아 있는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이 다 함께 심판을 받는 것이므로, 세상 살다가 죽는다 하여도 심판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히 9:27)

히브리서 9장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둘째,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였다.

말씀을 전파하되, 때를 가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복음을 전파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늘 깨어 있는 삶을 말씀한다.


"범사에 오래 참으라."라는 뜻은, 심판의 날을 알 수 없으니 죽는 날까지 인내하며 늘 깨어 있어라는 뜻이다.

경책이란?
죄를 깨닫게 하고 꾸짖어 잘못을 지적하라는 뜻이다.

경계란?
죄를 비방하고 책망하여 엄하게 따지라는 뜻이다.

권함이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위로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경책하고 경계하면서 권하여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셋째,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하였다.

때가 이르게 된다는 뜻은, 복음 사역을 오래 하다 보면, 마지막 날의 기약은 알 수 없고,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때를 말씀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떠나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기를 원하게 되고, 세상 부귀영화를 쫓는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도 세상 삶에 맞추게 되고, 가르치는 자들도 진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사역할 당시에도 이러한 삶으로 전환하는 신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 삶에 도움 되는 설교는 좋아하고, 육신의 소욕을 거스르는 말씀은 싫어하지 않는가?

성령의 열매는 세상 부귀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맺어지는 진리의 열매이다.(갈 5:22~23)

갈라디아서 5장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나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자들과, 육신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 세속 된 삶을 가르치는 자들은, 그 받을 심판을 감내하여야 할 것이다.(마 7:22~23)

마태복음 7장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넷째,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하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대하여, 장차 나타나게 될 세상 풍조와 불법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고난을 받더라도, 전도자의 맡은 바 충성을 다하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당시 사도들이 살던 문화와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다. 과거와 달리 현대문명을 접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절대신에 대한 인식도 각자의 지식과 판단으로 해결하려 하는 시대이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이는 휴머니즘(인본주의)의 발현이 개인주의 사상을 우선하게 만든 문화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사역할 당시처럼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여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은 달란트의 재능으로 사역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마 25:14~46)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는 선지자 사도들이 여호와의 권능으로 받는 능력이지만, 달란트의 재능은 세상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육신의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학문명으로 인하여 각종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노력으로 참된 신을 찾는다면,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법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을 모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참된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에 힘쓰는 삶이란?
내 삶이 말씀 안에 늘 깨어 있어서, 세상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깨어 있는 삶이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과, 삶의 실천이 생활 속에서 향기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늘 깨어 있는 삶 속에서 전파되는 것이다.

2023. 1. 10. 솨케드(שקד)

934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사 54:1)

이사야 54장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어떻게 하면, 아기를 낳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