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평생을 사도의 사명을 완수하며 살았다.
그가 감당해야 할 사도직은 참으로 힘겨웠을 것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오직 말씀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웠고, 육신의 죽음에 이르도록 가야 할 길을 달려갔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 그는 지켜야 할 믿음을 다 지켜내었다.
본문에서는 짧은 구절로 그의 신앙을 밝히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환난을 감내하였다.(고후 11:22~27)
고린도후서 11장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모든 사도들도 환란과 핍박을 당하였지만,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도 많은 계시를 받았으므로, 더 많은 고난을 받은 것이다.
그가 이토록 큰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기 때문이다.(고후 12:1~4)
고린도후서 12장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을 최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보았고, 하늘의 천사들도 보았다.(사 6장, 겔 1장, 계 4장)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는 비밀도 보았다.(계 1:20, 계 5:6)
그러므로 사람들의 영혼이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나는 비밀을 잘 알고 있다.(창 2:7)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달려갈 길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달려갈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광명한 새별별 천사로 돌아간 것처럼,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히 1:4~5, 13, 계 22:16, 욥 38:4~7)
히브리서 1장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중략-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요한계시록 22장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욥기 38장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크게 쓰시기 위해,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죄인의 자리에서, 나중에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도의 자리로 옮기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의 사자들을 붙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지난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살다가, 훗날에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죄를 많이 지은 자가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본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상 사는 날 동안 가장 보람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것을 얻는다 하여도, 복음을 증거한 열매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보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낼 때이다.
하루의 일과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힘이 솟는 날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닐까 싶다.
필자에게도 가장 보람된 하루는, 글을 완성할 때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은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받은 계시를 다 증언할 때까지 쓰게 될 것이다.
필자가 한 가지 증언할 것이 있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받은 계시에 대한 비밀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을 살다가, 밤에 꿈을 꿀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 꾼 꿈은 현실이 아니므로 무시하든가 아니면, 참고한 후 곧 잊어버리게 된다.
꿈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도 꿈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가 있다.
이때 받은 계시의 꿈은, 일반 꿈들과 다르다.
성령 안에서 받은 계시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기 때문이다.
실상을 보게 되면, 현실이 오히려 허상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실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허상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물론, 세상에 사는 날 동안은 육신이 살아야 하므로, 육신의 삶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허상의 삶을 통하여, 실상의 나라를 사모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증언하는 그의 달려갈 길은, 세상 삶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실상이었다.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도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허상을 본 것보다, 더 명확한 실상을 본 것이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늘나라의 실상을 보았기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고 선지자와 사도들도 육신의 죽임 당함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가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있다. 그 받은 사명을 다 이룬 후 본향으로 돌아간다.
본향에 돌아갈 때에 세속 된 열매만 남기도 돌아간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럽겠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남기고 돌아간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증언한 것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 말씀하였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은, 세세토록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잠시 살다가 없어지는 허상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하늘나라의 실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실상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2024. 8. 10. 솨케드(שק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