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여호와(יהוה)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일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하나님을 만나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생들의 사랑은 육체와 정신 작용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표현일 뿐, 온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불완전하게 지음 받았으므로, 완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시려고, 삶의 애환을 주셨다.
삶의 애환을 통하여 마음이 이끌리게 되고, 이끌리는 감정을 통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게 되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사춘기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첫사랑의 시작은 이웃 친구들이나 학교 생활을 통해 시작될 것이고, 사회생활을 통해 사랑의 열정이 무르익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열정이 성숙하는 시기는, 육체가 왕성한 때이다. 사랑의 열정은 육체가 불타오를 때, 뜨거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장작불이 가장 활기차게 타오르는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꽃이 시들어가는 때가 되면 화력은 점점 사그라지듯이, 인생의 노후가 되면 젊은 시절의 사랑을 되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만, 손주 사랑과 또 다른 사랑의 감정도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열정적인 참 사랑은 젊은 날의 연인들과의 사랑이 될 것이다.
인생들의 사랑은 완전하지가 못하다.
사랑의 불꽃이 피어날 때에는 모든 것을 바칠 듯하다가도, 그 불꽃이 사그라지게 되면 뜨겁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시드는 꽃과 같기 때문이다.(벧전 1:24)
베드로전서 1장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그러므로 인생들의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 안에서 조금만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인생들의 참 사랑은,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좋은 감정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점 미움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들에게 주어진 불완전한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부가 평생 동안 너무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보다 부부간의 사랑이 오히려 우상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원한다면, 첫사랑을 생각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젊은 날의 뜨겁던 첫사랑의 추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조금씩 희석은 되어가지만, 그 감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사한 인생들은, 함께 삶으로 인하여 사랑이 미움으로 변질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첫사랑과 같이 변하지 않는 사랑이시다.
어느 방송에서 본, 노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좋은 세상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퀴즈 맞히기 대회가 있었을 때이다.
퀴즈의 내용은 "천생연분"을 맞히기 위한 질문이었는데, 답변은 "평생 웬수(원수)"였다.
노부부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답변이지만, 유머가 되어 버렸다.
웃을 수밖에 없는 유머 같지만, 이 것이 곧 인생이고 부부관계인 것이다.
인생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투고 싸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불화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이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시샘하는 불꽃과도 같고, 마음에 품은 도장과도 같아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아 8:6)
아가 8장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인생들도 첫 사람의 감정은 잊을 수 없는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 오죽하실까?
하나님은 벌레 같은 인생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사 62:4)
이사야 62장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헵시바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뜻이고, 쁄라란, 결혼한 여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여, 사랑을 고백하듯이 결혼하는 관계를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의 본성은, 왜 이렇게 간사한 것일까?
왜, 처음에 사랑하던 인연을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살면서 간사하게 변질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에녹 3서]에 기록되어 있다.
타락 천사들은 하나님보다 사탄이 된, 사타나엘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3장 환상.
-중략-
사타나엘은 엄한 아버지의 성격과
부드러운 어머니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정말 매력적인 천사였지요.
지위도 천사들 중에 제일 높아 천군의 3분의 1을 지휘했으며
수많은 천사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 타락 천사들의 죄를 깨우치게 하려고, 인생들을 불완전하게 지으셨다.
창세 전, 하나님의 첫째 아들 사타나엘은 매력적인 대천사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처럼 높은 신이 되고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이다.
사타나엘은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그를 따르던 천사들을 미혹하여 타락 천사들이 되게 하였다.
이처럼 우리네 인생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서도, 다른 연인을 넘보는 것은 타락한 천사의 심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타락 천사들의 죄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들을 마음을 간사함 그대로 두신 것이다.
우리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이다. 우리들의 영혼이 창세 전,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사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죄 때문에, 하늘나라에 거하지 못하고 땅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 천사의 생기를, 사람의 육체에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령이 되게 하였다.(창 2:7, 에녹 3서)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녹 3서]
9. 종말과 재생
-중략-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인생들은 죄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우리네 인생들도 사랑 때문에 목숨을 희생할 때가 있는데,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실까?
완전하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스올(죽음) 같이 강하여, 아무도 끌 수 없는 불길 같으시다.
환언하면,
만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너 죽고 나 죽자."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한번 더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에는, 그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만큼, 심판도 엄중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죽음(스올) 같이 강하다.(아 8:6~7)
불길 같고, 스올(죽음) 같이 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25. 5. 24. 솨케드(שק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