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장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여호와(יהוה)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렸다. 광야길 사십 년은 참으로 험난하였다.
홍해를 건너는 과정부터 순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애굽의 군대가 뒤 쫓아올 때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무더운 사막에서는 뜨거운 햇살과 추운 밤, 그리고 배고픔과 목마름 등, 수많은 고난이 가로막고 있었다.
여호와(יהוה)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이 닥칠 때마가 해결하여 주셨다.
홍해가 가로막고 있을 때에는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고, 무더운 사막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배고플 때에는 메추라기와 만나를, 목마를 때에는 바위틈에서 샘물을 내어주셨다. 이처럼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게 하였다.
그런데 38년간의 광야길을 걷는 도중,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에돔에 이르렀을 때였다. 에돔 사람들이 길을 허락하지 않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르산에서 질러가는 길이 막혀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는 도중, 힘들다고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나님은 본질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번에는 벌을 내리셨다.
불뱀을 보내어, 물려 죽게 하신 것이다.
뱀의 상징은 사탄이다.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사탄과 함께 멸망당하게 하신 것이다.
백성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이 같이 부르짖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은 들어주셨다. 타락한 백성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지라, 죄에서 구원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장대 위에 불뱀을 매달게 하였고,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다.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아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다. 진노의 자식이 된 이유는, 천사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천사들을 구원하기 위해 천사의 생기를 사람의 육체에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령(혼)이 되게 하였다.(창 2~7~8, 에녹 3서)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녹 3서]
9. 종말과 재생
-중략-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타락 천사가 죄 때문에 육신을 입었으므로, 육신대로 살면 죽으리라 말씀하셨다.(롬 8:13)
로마서 8장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호와(יהוה)께서는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살아가는 백성들을 뱀에게 물려 죽게 하였다.
그러나 저들을 불쌍히 여겨 붉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게 하시고,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
이는, 장차 예수가 사탄에 의해 죽임 당하고, 십자가의 붉은 피로써 속죄함을 받게 하려는 구원의 상징이다.(요 3:14~15)
요한복음 3장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조명해 보련다.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각자가 걸어가야 할 광야 같은 인생길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 죽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것인가?
우리들의 생명은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하늘나라에 있다.
이를 온전히 믿는다면, 불평하기에 앞서 기도드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질이 타락하여 육신을 입었으니, 육신의 죄 값은 치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죗값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것이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2025. 3. 25.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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