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나사렛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목수의 일을 하며 자랐다.
얼마나 초라한 모습이었으면, 그의 가족들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배척하였을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예수의 모습은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볼품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사 53:2~3)
이사야 53장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구유에서 나셨고,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으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쓰시기 위해, 낮은 자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가 살던 나사렛이 얼마나 시골이었으면, 제자 나다나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하였다.(요 1:45~46)
요한복음 1장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하나님은 세상 권세 있는 자들의 죄를 깨우치기 위해, 낮은 자를 택하여 그의 사자로 보내실 때가 많으셨다.(고전 1:26~29)
고린도전서 1장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그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시다.
세상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의 육신을 붙들고 미혹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인으로 추대할 것이다.
그러면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인으로 추대하는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은 자가 나타나 지혜의 말씀을 선포하면 추대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세상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가는 자들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혜자를 추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권을 잡은 자들은 안하무인격이 되어 낮은 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볼 수 있어도, 추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군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하고, 상위층에서 하위층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러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명시는, 지식적인 해석에 불과할 뿐, 실천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상위층의 인권은 존귀하고 하위층의 기본권은 무시당해도 된다는 양심은, 예전부터 내려온 관료주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의 의식 수준을 깨닫지 못하고 권력을 휘두르면, 그의 상응하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벌 받은 사람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죄를 불쌍히 여겨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할 것이다.
자신의 죄를 진실로 통회하는 자라면, 벌을 내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는 벌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죄책감에 빠져 고통스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라면, 벌을 받아서라도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신학 박사의 학위를 받고 명문학교를 나오면, 예수와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배우지 못했지만, 많이 배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지혜로우셨다.(요 7:14~16)
요한복음 7장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는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지혜였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도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이라면, 신학 지식과 상관없이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지식이 그릇되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 지식이 없으면 흘러간 역사를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지혜는 세상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의 지혜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밝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받은 지혜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알 것이다."(요 7:17)
요한복음 7장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필자는 신학을 배우지 않았기에, 신학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어릴 적에 받은 성령의 계시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
그런데 신학을 배운 분들이, 신학을 배우지 못한 필자의 글을 이해 못 하여,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필자의 글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배척하려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명문 대학을 졸업하거나 이름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가 살던 시절에는 목수의 일이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므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예수의 교훈을 배척하였다.
오늘날에도 예전과 같은 전례를 밟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별할 영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25. 7. 10. 솨케드(שקד)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