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곧 성령의 가르침 안에서 서로 사귐이 있는 삶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들은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빛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육으로 난 자들이다.
육으로 난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므로, 저들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저들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이는 육으로 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은 태초 전, 죄를 범한 타락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늘의 천사들이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은 것이다.(에녹 3서)
육으로 난 최초의 사람은 아담이다.
아담은 타락 천사의 생기를 불어넣어 지음 받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다.(창 2:7)
그러므로 사람들은 천사의 영(생기)으로 인하여 사람의 육신을 입은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 천사들이 아니면,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죄 없는 천사들이다.(롬 8:3)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롬 8:3, 히 1:4~5)
로마서 8장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히브리서 1장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위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보내심을 입기 전에는 하나님의 천사들 중 하나였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 중에 예수를 지극히 높여 구세주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십자가의 사명을 주셨고, 예수는 십자가의 사명을 이룸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영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 비밀을 알고 계셨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마 22:30, 눅 20:34~36)
마태복음 22장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20장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성경말씀은 여호와의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 곧 새벽 별들이라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새벽 별들은 태초 전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한 여호와의 아들들이다.(욥 38:4~7)
그리고 예수는 광명한 새벽별이시다.(계 22:16)
성경은 이러한 말씀을 추상적으로 밝히고 있다.
성령의 말씀은 추상적이므로, 성령으로 난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니면 밝힐 수 없는 비밀이다.(계 5:6, 계 1:20)
사도 요한은 성령의 권능에 이끌려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고, 이 비밀을 추상적으로 증언하였다.
이 말씀을 추상적으로 증언한 것은,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증언하는 성령의 가르침을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였다.(롬 10:9~10)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성령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행함으로써, 빛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행한다고 말하면서 어둠에 있는 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세상은 죄짓는 방법도 날로 지능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악(惡)이 선(善)을 삼킬 듯이 발악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마지막 때에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우리들의 삶을 대적하기 때문일 것이다.(벧전 5:8~9)
베드로전서 5장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믿음의 삶을 지켜온 선조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풍요를 누릴 때에는, 그들의 심령도 부요와 함께 부패하게 되었다. 그들이 부패하면 재앙을 만나게 되었고, 재앙을 통해 새롭게 변화를 받았다.
이처럼 육으로 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육신의 소욕으로 인하여 흥망성쇠의 삶을 쳇바퀴 돌듯 거듭하는 것이다.
필자가 어릴 적 당시에는 삶의 질이 매우 낮았다. 먹고살기조차 힘들고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그 시절, 사람들의 심령은 순수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예배당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때였다. 그 순수성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웠을 것이다.(필자는 30대 중반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어릴 적 예배당에 몇 번 들어가 보았다.)
오늘날은 과학문명으로 인하여 삶의 질은 높아졌다. 그러나 풍요와 부패한 문화권 속에서 인간의 순수성은 지속되고 있을까?
필자가 어릴 적에는 학교 선생님이 하늘처럼 높아 보였다.
당시에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위계질서가 분명하였고 존경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풍조는 이러한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즉, 존경스럽던 스승의 위치가 촌지라는 문화 속에서 저속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러하더니 오늘날에는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가르치는 스승을 폭행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세상 문화는 죄악의 풍조를 타고 사람들의 순수성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삶의 질이 떨어지는 자들은, 저들의 불만을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사탄은 세상 풍조를 통해 사람들의 심령을 병들게 하고, 화를 다스릴 능력조차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타락 천사들을, 이토록 사랑하셔서 심판의 날을 오래 참고 계신다.(고전 13:4)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생명보다 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빛 가운데 행하는, 서로 사귐이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빛 가운데 행하라, 그리고 빛 가운데에서 서로 사귀어라고 말씀하시는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본다.
2023. 7. 25.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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