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육신의 가시, 곧 질병이 있었다.
아픈 몸이 낫기를 바라면서 세 번이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받은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통해 온전함을 이루려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권능을 받게 되면 교만해 보이기 쉽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의 능력으로 착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행 14:8~12, 행 20:9~12)
사도행전 14장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사도행전 20장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도들의 신체가 탁월하고 건강하면,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너무 큼으로,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생각하였고 약한 것을 통하여 자만하지 않게 됨을 기뻐하였다.(고후 12:7)
고린도후서 12장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에 있는 질병을 고쳐달라고 기도드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시고, 받은 은혜를 족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인생들의 교만을 잘 알고 계신다. 육신을 입은 사람들은 육신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통해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만해 보이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은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 사역하셨다.
하나님의 권능을 많이 받은 자는, 많은 고난과 많은 핍박을 감내하며 사역하였다.
이는 여호와(יהוה)의 권능으로 계시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증언하면, 세상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은 자는,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으며 사역하였고, 은혜를 적게 받은 자는 적게 사역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달란트의 재능을 받은 자는 많은 열매를 맺고, 적은 재능을 받은 자는 적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것이다.(마 25:14~30)
예수께서는 여호와(יהוה)께로부터 큰 은혜를 받으셨기에, 큰 권능을 입고 사역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다.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내하였다.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 삶의 풍요로 생각할 때가 많다.
이는 세속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육신의 풍요가 다 그릇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육신의 풍요를 입어도 하늘나라의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풍요 속에서 더 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에 속한 자들은 육신의 풍요를 나의 도구로 삼아 하나님을 믿을 때가 많다. 그러므로 삶이 궁핍해지고 고난이 닥쳐오면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마 7:24~27)
그리고 세상 풍요를 따르다가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육신의 풍요를 누리도록 할 수 없어서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하늘나라를 더욱 사모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비밀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계시하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도 고난 가운데서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육신의 풍요가 크면 클수록 부패하고 교만해지기 쉽다.
지구촌의 긴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기독교 문화가 발전하면서 국력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저들의 국가는 교회와 성당이 술집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풍요가 낳은 폐단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는 편지를 쓸 때, 글로 써서 보내는 아날로그(analogue) 문화였다.
연말이 되면 연하장과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는 기쁨도 있었다.
그리고 정성 들여 쓴 글씨 속에는 사랑과 우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정성과 받는 사람의 기쁨은, 큰 감동을 불어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digital) 문화이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E-mail을 전송하고 카톡이나 SMS(Short Message Service) 등으로 문자를 보낸다.
그러나 받는 사람들에게는, 기쁨보다 때로는 스팸문자와 같은 짜증을 불러오게 만든다.
이토록 편리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운 건, 풍요만이 삶의 행복을 주는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하늘나라의 비밀을 본 아굴이, 이렇게 기도하였을까?
[아굴의 기도]
잠언 30장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사도 바울이 증언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부족한 점을 통해, 하늘나라를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3. 10. 12.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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