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케드(שקד)

2025-05-26

930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4)

마태복음 9장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서기관들의 악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악한 생각은 사탄의 불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창세 전, 사타나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첫째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처럼 높은 신이 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이 되었다.(
에녹 3서)


[에녹 3서]
7장 짐승의 지식.
-중략-
천국에 하나뿐인 대 천사장 사타나엘.
너는 내 명령을 어기고 천국 밖으로 나가
금지된 세계와 금단의 지식을 맛보았다.
나는 너를 용서치 않기에
너의 모든 것을 파멸로 돌이킬 수 있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노라.
너는 대 천사장의 지위에서 박탈되어
천국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러자 분노에 불타는 목소리로 사타나엘이 맞섰다.
주님은 천국에 있는 자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고
그 안에 생물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 없는 손길로 말미암아
그들은 원치 않게 육신으로 만들어졌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싸인 채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주님은 그들을 버리시어
그들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내리시는 겁니까.


그러자 하느님은 더욱더 분노한 목소리로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그를 저주했다.
그것은 전부 다 나의 뜻이 그곳에
임했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왜 너는
그곳에 너의 지혜를 뿌리어
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냐.
너는 절대 그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사타나엘은 자신에게 주어진
온 힘을 모아 자신을 구속하던
불타는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죄인의 자리에서 일어나
신에게 대적하며 말했다.
주님께서 감추시려 하여도
저는 모든 것을 전부 알고 있나이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진화하는 힘이 있어
당신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가능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당신의 위치에 이를 수 있는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버리셔도
저는 그들과 함께 하며
당신께 이를 수 있는 힘을 얻을 겁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진화와 지식.
그리고 나의 지혜와 불멸성을 합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습니다


사탄이 된 사타나엘은 천사들 중에 가장 뛰어난 대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천국에서 쫓겨날 때, 그를 따르던 타락 천사들과 함께 땅으로 내려왔다.
하나님은 땅으로 쫓겨난 타락 천사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타락 천사의 생기를 육체에 불어넣어 사람으로 지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 2:7)


첫 사람 아담은 타락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진리의 말씀을 증언하여도, 그릇된 생각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악한 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심성이 그러하였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진리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된다.
필경,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말씀을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자신이 주인이므로, 깨우치려는 마음이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더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시면서, 병든 자들을 고치시던 중이셨다.
그때 어떤 서기관들이, 중풍병자를 고치시던 예수를 바라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마 9:2~3)


마태복음 9장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신성모독(神聖冒瀆)이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을 모독하는, 불경스러운 행위를 말한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를 부정하고 있었다.
이는 저들의 섬기는 신은 여호와(יהוה)가 아니라, 사타나엘이 저들의 신이었기 때문이다.(요 8:43~44)


요한복음 8장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여호와(יהוה) 하나님 외에 것들은, 사탄이 만들어놓은 우상이다.
사탄은 땅으로 쫓겨날 때부터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여 우상을 섬기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우선하여 섬기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것의 중심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사탄이,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둘째,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자신의 죄를 깨우치기보다, 정죄하기를 좋아한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그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순종할 줄 안다. 자신의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자신의 철학이나 지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성령의 가르침을 증언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악한 마음을 품을 때가 있을 것이다.
악한 생각을 품을 때에는, 사탄이 주는 미혹의 덫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여 선악과를 먹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악이란, 금융 사기범이나 도박, 보이스 피싱 같은 범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에 드러나지 않는 거짓된 심성이, 더 악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심령을 속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2025. 5. 26. 솨케드(שקד)

2025-05-25

829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창세기 12장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호와(יהוה)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말씀하셨다.
사람이 복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국어사전에 복의 개념을 찾아보았다.


복(福)
1.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2. 어떤 대상으로 하여 만족과 기쁨이 많음을 이르는 말
3. 해당되는 몫을 많이 가지거나 당하거나 겪게 되는 처지


한자의 복(福) 자를 파자하면 示, 一, 口, 田이다.
"示" 자는 신(神)을 의미하고, "一" 자는 하루(日), "口" 자는 사람의 입, "田" 자는 밭을 의미한다.
종합해서 설명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의 밭을 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일용할 밭의 양식을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먹을 복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복의 개념은 행운, 행복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이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복이 있으므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빌어줄 수도 있다. 제삼자에게 빌어주는 복을, 축복(祝福)이라 말씀한다. (祝: 빌 축, 福: 복 복)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셨다.(창 12:3)


창세기 12장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은 먹고사는 복을 지니고 있지만,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천사와 선지자, 그리고 사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축복하였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축복할 권세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사자들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타락 천사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거룩한 천사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예언자가 되게 하셨다.(
에녹 3서, 롬 8:3)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중략-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 8장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거룩한 천사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성령으로 난 것이라 하였고, 타락한 천사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육으로 난 것이라 하였다.(요 3:6)


요한복음 3장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난 자들은 여호와(יהוה)께로부터 성령의 복을 받는다. 여호와(יהוה)께로부터 받은 복이 곧, 성령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실 때,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하였고 죽은 자를 살리었다.
복이란,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는 것이다.(시 118:26, 마 26:26, 창 32:24~28)


시편 118장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마태복음 26장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2장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장 28절 말씀에,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구절은 천사와 씨름한 후, 천사로부터 축복을 구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축복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이 축복하는 구절은 있어도, 여호와
(יהוה) 하나님이 축복하는 구절은 없다.
그러므로 [호세아] 말씀을 참고하였다(호 12:3~4)


호세아 12장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세아] 말씀에도 하나님으로 번역한 구절이 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서 하나님과 겨루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권능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천사든 사람이든 하나님의 권능을 입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엘리야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입을 때에는, 축복할 권세도 있고, 저주할 권세도 있는 것이다.


말씀의 요지는 이러하다.
복은 하나님이 부어주신다.
복이란, 먹고사는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개입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주어 성령의 권능을 행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권능을 행하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다.
여호와(יהוה)의 사자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태어난, 성령으로 난 자들이기 때문이다.(롬 8:3)
성령으로 난 자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축복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모든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025. 5. 25. 솨케드(שקד)

2025-05-24

92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

요한일서 4장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여호와(יהוה)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일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하나님을 만나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생들의 사랑은 육체와 정신 작용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표현일 뿐, 온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불완전하게 지음 받았으므로, 완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시려고, 삶의 애환을 주셨다.
삶의 애환을 통하여 마음이 이끌리게 되고, 이끌리는 감정을 통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게 되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사춘기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첫사랑의 시작은 이웃 친구들이나 학교 생활을 통해 시작될 것이고, 사회생활을 통해 사랑의 열정이 무르익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열정이 성숙하는 시기는, 육체가 왕성한 때이다. 사랑의 열정은 육체가 불타오를 때, 뜨거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장작불이 가장 활기차게 타오르는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꽃이 시들어가는 때가 되면 화력은 점점 사그라지듯이, 인생의 노후가 되면 젊은 시절의 사랑을 되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만, 손주 사랑과 또 다른 사랑의 감정도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열정적인 참 사랑은 젊은 날의 연인들과의 사랑이 될 것이다.


인생들의 사랑은 완전하지가 못하다.
사랑의 불꽃이 피어날 때에는 모든 것을 바칠 듯하다가도, 그 불꽃이 사그라지게 되면 뜨겁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시드는 꽃과 같기 때문이다.(벧전 1:24)


베드로전서 1장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그러므로 인생들의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섭리 안에서 조금만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인생들의 참 사랑은,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좋은 감정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점점 미움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들에게 주어진 불완전한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부가 평생 동안 너무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보다 부부간의 사랑이 오히려 우상이 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원한다면, 첫사랑을 생각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젊은 날의 뜨겁던 첫사랑의 추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조금씩 희석은 되어가지만, 그 감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사한 인생들은, 함께 삶으로 인하여 사랑이 미움으로 변질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첫사랑과 같이 변하지 않는 사랑이시다.


어느 방송에서 본, 노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좋은 세상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퀴즈 맞히기 대회가 있었을 때이다.
퀴즈의 내용은 "천생연분"을 맞히기 위한 질문이었는데, 답변은 "평생 웬수(원수)"였다.
노부부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답변이지만, 유머가 되어 버렸다.
웃을 수밖에 없는 유머 같지만, 이 것이 곧 인생이고 부부관계인 것이다.
인생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투고 싸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불화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이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시샘하는 불꽃과도 같고, 마음에 품은 도장과도 같아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아 8:6)


아가 8장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인생들도 첫 사람의 감정은 잊을 수 없는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 오죽하실까?
하나님은 벌레 같은 인생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사 62:4)


이사야 62장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헵시바란,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는 뜻이고, 쁄라란, 결혼한 여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여, 사랑을 고백하듯이 결혼하는 관계를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의 본성은, 왜 이렇게 간사한 것일까?
왜, 처음에 사랑하던 인연을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살면서 간사하게 변질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에녹 3서]에 기록되어 있다.
타락 천사들은 하나님보다 사탄이 된, 사타나엘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3장 환상.
-중략-
사타나엘은 엄한 아버지의 성격과
부드러운 어머니의 성격을 동시에 갖춘
정말 매력적인 천사였지요.
지위도 천사들 중에 제일 높아 천군의 3분의 1을 지휘했으며
수많은 천사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 타락 천사들의 죄를 깨우치게 하려고, 인생들을 불완전하게 지으셨다.
창세 전, 하나님의 첫째 아들 사타나엘은 매력적인 대천사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처럼 높은 신이 되고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이다.
사타나엘은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그를 따르던 천사들을 미혹하여 타락 천사들이 되게 하였다.
이처럼 우리네 인생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서도, 다른 연인을 넘보는 것은 타락한 천사의 심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타락 천사들의 죄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들을 마음을 간사함 그대로 두신 것이다.


우리들의 본향은 하늘나라이다. 우리들의 영혼이 창세 전,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사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죄 때문에, 하늘나라에 거하지 못하고 땅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 천사의 생기를, 사람의 육체에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령이 되게 하였다.(창 2:7에녹 3서)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녹 3서]
9. 종말과 재생
-중략-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인생들은 죄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불완전하게 지음 받은 우리네 인생들도 사랑 때문에 목숨을 희생할 때가 있는데,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실까?
완전하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스올(죽음) 같이 강하여, 아무도 끌 수 없는 불길 같으시다.


환언하면,
만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너 죽고 나 죽자."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한번 더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에는, 그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만큼, 심판도 엄중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죽음(스올) 같이 강하다.(아 8:6~7)
불길 같고, 스올(죽음) 같이 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25. 5. 24. 솨케드(שקד)

930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4)

마태복음 9장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서기관들 의 악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악한 생각은 사탄의 불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창세 전, 사타나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