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장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세상 법률도 도덕과 윤리의 규범에서 크게 벗어날 때 제재를 가한다. 그것도 지켜야 할 규범의 최소 기준이다.
이렇게 제정된 법률도 그 사람이 살아있을 동안에 적용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죽고 나면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도 이 같은 경우에는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은 도덕과 윤리의 규범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기에는 제약된 규정이 너무나 많다.
구약시대 때에 규정한 율법의 종류만 하여도 613개나 된다.
이 율법들을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마 22:37~40)
마태복음 22장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고 "간음하지 말라"라는 율법의 해석은 이러하다.(마 5:28)
마태복음 5장
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렇게 마음의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시는 이유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태초 전 타락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타락 천사들은 여호와(יהוה)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나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에녹 3서, 창 2:7)
성경은 이들을 두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라 말씀한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을 따르던 자들이므로, 육신을 입고 살면서 육신의 소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신 것이다.(엡 2:1~5)
이처럼 율법은 타락 천사들의 죄를 깨우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여호와(יהוה)께서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시려고 구약시대 때부터 그의 사자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신약시대 때에는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이는 육신으로 짓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죄 사함을 이해시키고자, 구약시대 때의 율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결혼한 여인에게 간음죄를 적용하려면 그의 남편이 살아있을 동안에 적용되는 것이지, 그의 남편이 죽고 나면 적용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이처럼 예수께서도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죄의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로마서 7장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죄는 예수를 통하여 죽은 것이다.
이제는 다른 이, 곧 부활 전의 예수가 아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와 함께 살면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의 육신은 죄를 짓도록 창조되었기에, 율법에 의해 육신의 정욕으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은 죄에 대하여는 예수와 함께 죽었으므로 율법의 제약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는 것은 묵은 율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새 생명의 법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로마서 7장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이 율법은 하나님이 정하셨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죄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율법이 나쁜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에게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죄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죄를 깨닫지 못했으면 구원받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된 내 육신은 탐심을 통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내 육신의 탐심도 죄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성립되지 않았는데,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나니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착하게 살도록 만들어진 율법이 오히려 나를 죄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나를 죄인으로 만든 율법과 계명들은 선한 것이다.
이 율법이 나의 죄를 심히 죄 되게 하여, 죄에서 건짐 받게 하신 것이다.
율법은 타락 천사들의 죄를 깨우쳐 천사로 돌아가게 하는 신령한 것이다. 율법은 신령한 것이지만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에,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육신으로부터 오는 죄에 팔려 사는 것이다.
로마서 7장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도 바울은 성령에 이끌리어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고후 12:2~4)
그는 성령에 이끌림 받으며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기에 성령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사도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성령의 뜻 안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육신의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왜, 성령의 뜻을 알고 있는데 성령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었을까?
육신을 입은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여호와의 권능 안에 있게 됨으로 육신의 소욕에 이끌림 받지 않는다. 이는 여호와의 권능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으면 육신의 소욕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 및 여호와의 사자들은 평소 때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처럼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이다.(요 7:39)
그러므로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는 것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태초, 아담을 지으실 때 육체 안에 생령(혼)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이다.(창 2:7)
그러므로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육체 안에 불어넣은 타락 천사의 영은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아, 죄 사함 받은 천사로 돌아가는 것이다.(마 22:30)
사람들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 동안은 육신으로부터 오는 죄를 벗어날 수가 없다.
육신은 죄를 짓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이 비밀을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은 타락 천사들의 죄를 깨우치도록 입혀놓은 가죽이므로, 육신이 다 소진하여 죽음에 이를 때까지는 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성령의 권능이 임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영적인 말씀, 곧 "일곱 별의 비밀(계 1:20)"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들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의 천사들을 봄으로써 "일곱 별의 비밀(계 1:20)"을 알고 있는 것이다.(사 6장, 겔 1장, 계 4장, 고후 12:2~4)
하나님의 사자들은 성령의 권능에 붙들려 있는 동안에는 육신의 죄가 사하여진 상태이므로 육신의 소욕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으면 또다시 죄와 함께하는 육신의 소욕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속 사람이란?
성령 안에서 누리던 자신을 말씀하는 것이다.
겉 사람, 곧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는 의미는?
성령 안에 있던 자신이 아닌.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자신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에 붙들려 있을 때의 생각과,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때의 생각이 서로 싸우듯 대적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싸움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자, 사도들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선지자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에 붙들림 받은 때가 평생에 몇 차례뿐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약 3년 동안 여호와께서 성령을 기름 붓듯 역사하셨기에 대부분 성령에 이끌림 받은 상태였다.(행 10:38)
사람들의 영혼은 죽는 날까지 육신에 매여있게 됨으로, 영과 육은 하나가 되어 죄를 감당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육신의 상태를 이렇게 비유하였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결론,
육신을 입고 살면서 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죄는 육신의 소욕을 통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죄는, 내 의지로 죄를 음모하거나 계획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소욕에서 일어나는 죄를 말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육신으로부터 자연 발생되는 생리적 욕구 등, 성령 안에서 행할 수 없는 욕구들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 성령의 뜻과 대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으로 일어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2022. 12. 1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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