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7.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 가르치는 성령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릇되게 가르치면, 그 교훈이 세속화되어 누룩처럼 번져나가게 된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곰팡이균이다.
곰팡이균은 누룩을 분해하는 효소가 분비되므로 빠르게 증식한다.
작은 곰팡이로부터 시작된 누룩이 전체를 부풀게 하듯, 그릇된 교훈은 사람들의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그릇된 교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사두개인"이란?
사두개파, 또는 사두가이파는 유대교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상 세력으로서 유대교의 유파이다.
"바리새인"이란?
바리새파, 바리사이파 또는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무리들이다.
바리새인은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에 존재했던 유대교의 경건주의 분파, 중간계급 평신도 경건주의를 말한다.
사도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리고 유대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전통 있는 종교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이 저들의 선진들이다.
세상 모든 민족들이 우상들을 섬겼지만, 오직 유대인들만은 참 신이신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들이었다.
그런데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언제부터 누룩과 같은 교훈으로 가르치는, 그릇된 자들이 되었을까?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이 없기에 알 수는 없지만, 영향력 있는 누군가로부터 교훈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루에 몇 보 이상은 걷지도 말라 등으로 제도를 만들어 지켰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생각으로 교리와 제도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지키게 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율례와 규례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율법과 규례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회칠한 무덤같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지키는 교훈은 그릇된 것이 된다.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겉모습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행하고 있는 교리와 예배, 그리고 성경 해석은 언제 어디서부터 정립된 것일까?
사도들이 사역할 당시에는 없었던 교리와 제도들이 새롭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예배당 명칭이 교회 명칭으로 바뀌고, 기도회가 예배로, 주일에 한 번 드리던 예배를 세 번 이상드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지 않는가?
주일 예배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지만, 수요 예배(수요 기도회)와 금요 예배(금요 기도회)는 언제부터인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서 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예배를 많이 드리게 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하신 말씀이 아니면 싫어하신다.
만약에 이를 더 기뻐하실 것 같으면, 월요 예배, 화요 예배, 목요 예배, 토요 예배까지 드리면 더 기뻐하실 것이 아닌가?
이러한 제도는 하나님도, 사도들도 공식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급할 때가 있다.
이때는 뛰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뛰게 되면 일시적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다고 하여, 쉬지 않고 계속 뛰도록 제도화시켜 버리면 멀리 못 가서 지쳐버릴 것이다.
신앙이란, 삶을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제도 안에 구속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러한 제도 안에 속해 있으므로 온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도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없는 제도가 한 번 생겨나면, 마치 율법주의 자들처럼 누룩과 같이 번져가는 것이다.
예배는 초대 교회 때보다 더 많이 드리는데, 신앙심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시대가 되어버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즉 하나님 말씀보다 단체가 만든 제도가 더 우선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날 대세를 이루고 있는 교리와 각종 제도들, 그리고 성경 해석들은 성령의 깨우침일까? 아니면 육신의 사고에서 비롯된 세속적 교훈일까?
그리고 그 교훈이 성령의 가르침이 아닌 세속적 교훈이라면,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을까?
왜냐면, 세상은 세속 된 문화에 걸맞은 말씀들을 들려주어야 저들의 귀에 듣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딤후 4:3~4)
디모데후서 4장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한 하나님의 사자들은 삼위일체 같은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령 안에서 한 분 하나님의 영체를 보았고, 그의 영이 그의 아들들에게 임하여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영체이지만, 성령은 영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영(성령, 권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와 선지자, 사도들은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욥 38:4~7, 계 1:20)
사람들은 태초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태초 사람의 생령(혼)은, 타락 천사의 생기를 불어넣어 지음 받은 "아담"이기 때문이다.(창 2:7)
사람들은 본래 천사였으므로 육신의 죽음 후에, 다시 천사로 돌아가는 것이다.(마 22:30)
마태복음 22장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천사)이었기에 부활 후, 다시 천사(광명한 새벽별)로 돌아간 것이다.(계 22:16)
이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면, 즉 우리들이 천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예수처럼 영생하는 천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리와 성경 해석은, 진리가 변질되어 천사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육으로 난 자들은 천사의 비밀을 알 수 없기에 육신의 사고로 성경을 해석하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은 성령 안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보았기에 천사로 돌아가는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아는 자들은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요 8:32)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는 오늘날에도, 성령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을까?
오늘날 지도자들은, 지난날 사도들이 증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가르치는 달란트 받은 종들이다.
달란트는 육신의 재능이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 중 [요한복음]이나 [요한계시록] 같은 말씀들은 성령이 아니면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는 말씀들이다.
이런 말씀들을 달란트의 재능으로 해석하다 보니, 지도자들마다 해석이 다르고, 성경 번역도 다른 것이다.
이렇게 굳어진 교리, 제도, 말씀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견고해져서 고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를 전통이라 말씀한다.
마치 선지자가 없는 400 년의 세월 속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생겨난 것처럼, 약 2000 년의 긴 세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릇되고 변질된 것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한 번 만들면 고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교회 문화이다.
누룩의 전염성은 퍼져나가는 것이지, 줄어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누룩(그릇된 교훈)은 오늘날에도 있을 것이다.
이는 세상 문화를 통해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탄의 계략이, 삶의 환경으로 침투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도 변개하려 할 것이고, 그릇된 교훈으로 세속화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빛과 어두움은 확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빛은 어둠이 덮을수록 말씀의 진리를 찾아 더욱 빛나게 될 것이고, 어두움은 어둠이 덮을수록 그릇된 교훈에 빠져 더욱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세상과 겸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속 된 자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면서도 죄의식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2023. 3. 20.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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