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꿈이나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생시에 하나님을 만났다.
생시에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큰 자로 쓰임을 받는다는 뜻이다.
대부분 선지자들은 생시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가운데 만난다. 이는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욥 33:15~17)
아브라함은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만나서, 맨 처음 받은 약속이 다음 말씀이다.(창 12:2~3)
창세기 12장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이때부터 그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받되, 자신을 저주하거나 해치려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을 내리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그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과 롯은 친족 관계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를 자식처럼 사랑했으리라 여겨진다.
롯 역시, 그의 삼촌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았을 것이며, 아브라함의 말씀도 잘 따랐으리라 여겨진다.
다 같은 친족 지간이라 할지라도 육신을 입은 사람들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을 위해 일하려 하는 목자들이 서로 싸우게 되면, 해결책을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육신을 입었으므로 육신의 소욕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는 육으로 난 까닭이다.
육으로 난 자들은 육신의 소욕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호와(יהוה)의 사자로서 육신의 소욕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영혼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하나님을 만난 자들은 성령의 권능 안에서 만나게 되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게 된다.(고전 2:10)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하기 전, 여호와께 몇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후로부터 아무리 부패한 민족들이라 할지라도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게 된 까닭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가축들이 날로 늘어남에 따라 영토가 좁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로 약속하셨기에, 영토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롯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네가 왼편으로 가면 나는 오른편으로 갈 것이고, 네가 오른편으로 가면 나는 왼편으로 가겠다고 말하였다.
롯은 하나님을 대면한 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있을지라도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제안에, 초목이 많고 기름진 땅을 택하게 된다.
그곳은 삶의 풍요로움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롯이 지명한 땅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는 지역이었다.
나중에 이 지역은 부패함으로 인하여 멸망당하게 된다.(창 18:20~33)
그때, 소돔에 살던 롯과 그의 가족들만 그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친족끼리 헤어지지 않고 다 함께 모여 사는 것도 행복하련만,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다.
이는 땅에서 잠시 사는 날 동안 육신의 죄를 깨닫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여호와(יהוה)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를 만나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태초 전부터 그의 아들, 곧 천사였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욥기] 및 [요한계시록], [에녹 3서]를 깊이 묵상해보면 밝혀진다.
사람들은 태초 전 천사들이었다.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태어난 그의 아들들(천사들)은 여호와의 사자들이고,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은 자들은 타락 천사들이다.(에녹 3서, 엡 2:2~3)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태어난, 성령으로 난 자이다.
그러한 반면, 일반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은, 육으로 난 자들이다.(요 3:6)
여호와께서는 성령으로 난 그의 사자들을 붙들고, 육으로 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땅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태어난, 육으로 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멸망의 길이 눈앞에 놓여 있어도 그 길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친구의 관계, 이웃의 관계, 그리고 배필과 동업자의 관계까지, 모든 분야에서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관계를 맺는 것이다.
육으로 난 자들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볼 수 없다. 이는 태초 전 타락 천사들이었기 때문이다.(에녹 3서, 요 3:6)
그러므로 이익과 손실 관계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들도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었으므로, 육신의 소욕을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다. 다만 육으로 난 자들보다 육신의 소욕이 덜할 뿐이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에 붙들리면 육신의 소욕을 완전히 초월하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육신의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육신이 풍요로우면 풍요로울수록 육신의 소욕에 얽매여 그들의 영혼이 부패하게 된다.
롯은 육신의 풍요를 위해 비옥한 땅을 원하였던 것이다.
육신의 풍요가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풍요를 통해, 그들의 영혼이 병들기 쉽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앞에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타락 천사들은 죄로 인하여 육신을 입었는데,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당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의 바로 왕과, 아비멜렉 앞에서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그들의 땅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피할 길을 찾게 하였던 것이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 천사들, 곧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이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천사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오늘날 나 자신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브라함과 같은 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지극히 작은 자의 믿음만을 간직하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내 육신이 다 소진하는 날까지 성령의 권능에 붙들려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만약에 내 친족과 다툼이 생겼을 때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할 수 있는 믿음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지금 나 자신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23. 5. 5.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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