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태초 전에 내가 있었던 본향, 곧 빛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하여 묵묵히 연단받으며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이다.
태초에 내가 있었다.
나는,
태초에 내가 있던 곳에서부터 세상이라는 분리된 공간(틀) 속에 들어온 것이다.
신(GOD)으로부터 부여된 공간 세상에 들어온 것,
이 공간 세상은 내 뜻과 무관하게 주어진 예정된 곳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내가 이 공간에 들어오기 전에, 공간 세상의 예정된 굴레들을...
이 굴레는 암흑 같은 깊은 터널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때, 나는 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며 두려움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이 터널 끝을 보았다.
터널 끝은 끝없는 두려움이 아니라, 정해진 굴레를 다 돌고 나면, 반드시 본래의 나의 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이 터널 속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태초, 나의 본 모습에서는 이 터널 예행연습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의 삶은 엄청 길게 여겨진다. 이유는 어둠의 터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어두운 터널에 비유한 것은, 내가 원래 있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추장스러운 육신 때문이다.
이제 분명한 해답을 찾았다. 내가 왜, 이 터널에 스스로 오게 되었는지를,
태초, 내가 있던 곳은 너무나 좋은 곳이었기에, 이 어둠에 잠시 여행하고 나면, 마치 갈한 자가 생수의 참맛을 느끼듯, 내 본래의 참 모습을 깨닫기 위함임을...
마치 잠을 자다 꿈을 꾸고 거기서 깨어나면, 이 꿈은 한낱 일장춘몽인 것처럼, 곧 잊어버리고 나의 참 모습에 기뻐하듯...
또 기억한다.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예행연습에서 어떤 책을 의지하여 길을 찾고 있었음을...
그것이 곧 성경이라는 걸 지금 어렴풋이 기억된다.
그런데, 터널 여행에서는 이 책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는 것을...
그러나 터널이 끝나고 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면, 이 복잡하고 어렵던 책은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단순한, 마치 빛을 보듯 다 알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 모든 진리를 알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은 잠시 기쁠 뿐, 또 긴 터널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신(GOD)은 말씀하고 계신다. 마지막 터널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은 이 모든 여행을 마치고 본래의 참 모습으로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거하기 위해 신(GOD)은 하늘의 보좌를, 이 세상에 여행 온 나에게 친히 계시해 주셨다.(사 6장, 겔 1장, 계 4장)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이 글을 쓴다. 이 순간도 터널 속, 즉 일장춘몽(一場春夢)임을 알기에...
그리고 굳이 이를 나 자신에게 증거해야 하나? 의문을 남기며...
지금 이 순간이 터널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위안을 가지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세상에서 비록 육신을 입고 고난받지만, 하늘 본향을 바라보며 가슴에 새긴 보화를 품고서, 잠시 받는 고난을 기도로 승화시킨다.
그러나 육신에 이끌리어 육신의 터널이 끝나는 날까지 매여 있어야 하므로, 때론 어쩔 수 없이 죄악에 물들 때가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구원의 은총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즉 어느 누구라도 정죄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육신을 입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할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하셨고, 또 육신 때문에 약 3년 동안의 사역을 앞두고 성령에 이끌리어 40일간 광야에서 시험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고 육신의 고난 때문에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정녕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다.
이 육신의 고난을 친히 당하시고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승천하신 그분은 오늘도 우리가 당할 육신의 고난을 아시고 지키신다.
친구, 형제라 하시면서...
2012. 5. 30
하나님의 사람, 작은 자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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