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케드(שקד)

2022-02-24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6~27)

에베소서 4장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그가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이다.(민 23:19)

민수기 23장
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매여 살게 됨으로, 육신의 소욕으로부터 오는 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으로부터 분쟁이 발생하면, 때로는 억장이 무너지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묻어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을 내는 스타일도 사람의 성품과 성향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남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내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하신다.(엡 4:26)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한 육신을 입고 태어났다.
불완전하게 태어났으므로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상 분쟁이 일어나면 화를 참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막상 서로 분쟁이 일어나면, 그 사람의 신앙과 믿음의 상태에 따라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화를 다스리려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견고한 사람은 말씀에 의지하여 화를 다스릴 것이다. 이는 진노하심에 대한 원수 갚는 일이 하나님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 때문이다.

성경은 원수 갚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는 동시에, 자신의 잘못도 돌아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롬 12:19, 마 7:3~4)

로마서 12장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마태복음 7장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에베소서 4장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특히, 신앙인이라면 화를 다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사탄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마귀가 신앙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 믿음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들도 의분(義憤)의 화를 낼 때가 있다. 이것마저 행하지 않는다면 잘못을 대적할 만한 시원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분(義憤)을 내되, 하루 해가 지도록 내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기에 우리들과 똑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살아가셨다.
그러므로 여호와(יהוה)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의 육신에 죄를 정하사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이다.(롬 8:3)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시며 의분(義憤)을 표출할 때가 있었다.(마 12:34)

마태복음 12장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만약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핍박할 당시에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였더라면 바리새인들은 즉석에서 죽임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심을 입었기에 평소 때에는 우리들과 똑같은 육신의 모습으로 의분(義憤)을 표출하신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여호와(יהוה)께서 필요에 따라 그의 사자들에게 임하는 권능이므로, 세상은 성령의 권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성령의 권능을 모르는 세상이 육신의 소욕으로 행하는 자신의 화를, 의분(義憤)으로 생각한다면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마 7:3)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는 즉석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마음의 상처가 크다 할지라도 그 화를 갚기 위해 하나님께 진노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잘 아시고 이루시기 때문이다.
오직,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육신의 죄로 인한 분쟁이 미시적 관점에서는 개인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각국의 종교, 경제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한 자국의 이권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분쟁이 극에 달하면, 개인은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믿음과 건강을 해치게 되고, 나라는 전쟁을 치르게 되어 수많은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불의에서 생겨나는 분쟁의 책임은 각자가, 또는 각국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결과는 세상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헤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이 볼 수 없는, 천국에도 있기 때문이다.

2022. 2. 24.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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