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장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여호와(יהוה)께서는 태초 후로부터 그의 사자들(아들들, 새벽 별들)을 온 땅에 보내었다.(욥 38:4~7, 계 1:20) 이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아들들(새벽 별들) 중 예수는 여호와의 맏아들(광명한 새벽별)이시다.(계 22:16)
그리고 맏아들 되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는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어 율법에서 해방하도록 은혜를 베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하여 누구나 구세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사자들 누구나 십자가에 못 박힌다 하여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다는 말씀도 있다.
사도 바울도 이와 유사한 고난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죽을 때 그의 육신은 톱으로 베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보다 더 힘든 고난을 받는다 하여도 예수가 행한 일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구세주의 역할은 예수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와가 이 일을 이루도록 태초 전에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가 마셔야 할 잔을 그들도 마시려고 하였다. 즉 예수가 당하는 고난을 그들도 당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잔을 마신다 하여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은 여호와가 정하신다고 말씀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권한에 있기 때문이었다.(마 20:22~23)
마태복음 20장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사도 바울과 하나님의 사자들은 다 같은 여호와의 사자들이고, 다 같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다 같은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한 [첫 열매들, 곧 첫째 부활에 참여한 복 있는 거룩한 자들]이었다.(고전 15:23, 롬 8:23, 계 14:4, 계 20:4~6)
하나님의 사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입으면 예수가 행한 이적, 기적들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여호와께서 더 큰 권능을 입혀주시면 예수보다 더 큰 능력도 행할 수 있는 것이다.(요 14:12)
그러나 예수를 여호와의 우편에 두는 것은 태초 전에 예정하신 여호와의 뜻이므로 이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말씀한다.
이는 육신으로부터 오는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죄 사함 받은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즉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이, 그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인침 받은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육에 속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믿음의 실체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육으로 난 자들은 태초 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타락 천사들이다.(에녹 3서)
즉 아담의 후손들은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였다.
다시 말해 타락 천사들, 곧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성령이 임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롬 10:9~10, 요 6:28~29, 엡 2:8~9)
오늘날 세상은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으므로 세상 재능(달란트)과, 성령의 은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한 하나님의 사자들은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받은 자들이지만, (요 5:27, 마 19:28, 계 20:4) 달란트의 재능으로 사역하는 세상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그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달란트 받은 자들은 세상을 심판하는 자들이 아니라, 심판 날 정죄함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씀이다.(마 25:14~46)
오늘날 세상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므로 성경 말씀도 저들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번역하고 해석하여, 누구나 믿음을 가지면 반드시 성령이 임하는 것으로 번역하였다.(요 3:3~7)
사도 바울은 성령에 이끌리어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고후 12:1~4)
그곳에서 여호와와 하나님과 여호와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던 것이다.
세상 끝날까지 여호와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여호와가 주신 권세이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십자가의 보혈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음을 증거하려는 것이었다.
예수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온 것은, 그의 아버지 여호와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베푸신 은혜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랑의 은혜를 깨우치려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은혜를 알고 있었기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보내시기 전까지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죄 사함 받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율법을 전혀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율법은 여호와의 거룩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율법을 통하여 깨끗한 행실로 빛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육신이 연약하여 행할 수 없는 율법들은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 받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율법을 통해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로 율법을 완성하게 만드는 것이다.(마 5:17~19)
마태복음 5장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풀어서 정의하면, 율법은 지킬수록 좋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율법에 매여 종노릇 하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받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지킨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올바르게 깨닫고 가르쳐야 율법의 완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2022. 7. 31.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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