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여호와(יהוה)께서 행하시는 성령의 권능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그 비밀을 밝힌 후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는 예정된 자들이 받을 긍휼과, 자유의지에 맡겨진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 받을 긍휼을 밝혀보겠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로 다니실 때에 성령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였다.(행 10:38)
하나님의 사자들도 평소 때에는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는다.(요 7:39)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지 않는다고 하여 성령이 그에게서 떠났다는 말씀이 아니다.
성령이 그에게서 떠났다는 말씀은, 두 번 다시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는 때와, 역사하지 않는 때를 비유하자면 이러하다.
양 무리를 몰고 다니는 목동이, 양 한 마리를 붙들고 이끄는 것을, 성령의 권능에 이끌림 받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붙들려 있던 양을 놓아둔 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을, 성령의 권능에서 놓임 받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반 양 떼처럼 각자의 재능으로 살아가도록 놓아둔 상태를, 달란트의 재능으로 살아가는 자들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권능과 같은 능력이므로, 달란트의 재능과 구별하여야 한다.
달란트의 재능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노력하면 행할 수 있는 보편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성령이 그에게서 떠났다는 말씀은, 양우리 안에 있던 양이 울타리 밖으로 떠나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양은 아무리 사랑하고 돌보아도 저들의 고집과 불평 때문에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이 같이 양 무리의 비유로써 성령의 권능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성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증거하였다.
태초 전 죄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난 타락 천사들, 곧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양 무리 안에 거할 수도 있고, 양 무리를 벗어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러나 예정된 자들은 양 무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는 "요나"처럼 여호와의 권능에 붙들려 사역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지자와 사도들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에 관한 비밀을 구체적으로 밝힌 성경은 [에녹 3서]이다.
[에녹 3서] "인류의 탄생"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추상적으로 밝힌 성경은 [요한계시록]이다.(계 5:6)
요한계시록 5장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임할 성령을 비유한 말씀이다.(계 1:20)
요한계시록 1장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아들들)이 여호와의 권능을 입고 사역하기 때문에 "일곱 별의 비밀"이라 말씀하였다.
일곱 별은 태초 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한 "새벽 별들(천사들)"이다.(욥 38:4~7)
구세주로 보내심을 입은 예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계 22:16)
이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온 땅에 내려와 사역하는 예정된 자들이다.(롬 8:3)
여호와의 사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하시면, 여호와의 신에 이끌림 받는다.(마 4:1)
여호와의 신에 이끌림 받으면 세상이 행할 수 없는 이적과 기적들이 나타난다.
즉, 세상 죄를 사하시는 권능을 받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행하게도 하신다. 이는 여호와의 권능(능력)으로 사역하기 때문이다.(마 9:6, 요 20:23)
예수께서는 성령의 권능을 입고 두루 다니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
어느 날 동네를 다니시던 중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은 마태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였다.
당시 로마 제국 정부에 세금을 바치도록 관리하고 있었다.
세리들은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여 이득을 챙기며 살았기에,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세리들과는 상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태는 당시 세리였기에 죄인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나면 육신의 소욕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는 육신으로부터 오는 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께서도 세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다니시면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의 심중을 살펴보신 것이다.
마태의 심중은 죄를 회개하고 제자의 길을 걷기에 합당한 자였기에 그를 부르신 것이다.
사람들은 태초 전 죄로 인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타락 천사들이 있는가 하면, 죄 없이 죄 있는 육인을 입고 태어나 하나님의 사자로 쓰임 받을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시니, 그는 곧 따르게 되었고 그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세리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 같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하였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말씀하였다.
이 말씀의 뜻은 이러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가 더러운 옷과 같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다.(사 64:6)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거룩한 율법을 지키고 살았으며,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무리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니 의아해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회칠한 무덤 같은 삶을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저들은 건강한 자들이라서 병원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꾸짖으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의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본질은, 스스로 죄를 깨닫는 자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지만, 죄 있으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긍휼히 여김 받을 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여호와께서는 태초 후로부터 그의 아들들(새벽 별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의 사자들이 되게 하였다. 그의 사자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었기에, 죄에 대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롬 9:15~16)
로마서 9장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예수께서는 이들의 죄에 대하여 용서하기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라고 말씀하였다.(마 18:21~22)
이들은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고 태어난 여호와의 아들들(새벽 별들)이기 때문이다.(욥 38:4~7)
그리고 태초 전 죄로 인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 천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을 자들이다.(롬 10:9~10)
그러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증언하는 말씀을 믿음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마 15:22)
마태복음 15장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이와 같이, 예수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율법을 통한 제사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즉,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은 여호와의 사자들을 찾음과 동시에, 죄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가 오신 뜻을 배우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날 우리들은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 의인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육신을 입으면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태초에 타락 천사였던 아담도 죄 때문에 육신을 입었고, 육신의 소욕에 이끌리어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즉 육신을 입으면 아무도 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죄 없이 죄 있는 육신을 입었기에, 그 육신에 죄를 정하사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롬 8:3)
그러나 죄 있는 그 육신 안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시면, 성령의 권능으로 다스리게 된다.
예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바란다.
2022. 10. 28.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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