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한 기쁨을 깨우치고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였다.
구원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구원의 기쁨은 믿음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은 여호와(יהוה)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인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뭇별과 같은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희망의 말씀을 받았다.(창 12:1~2)
창세기 12장
1.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가 늙도록 사라에게 잉태 소식이 없자,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백세가 되어 죽은 것 같이 늙었을 때였다. 그의 아내 사라도 이미 늙어 경수가 끓어졌고 죽은 것 같은 할머니가 되었을 때였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타나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고 "이삭"을 아들로 맞은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늙은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다고 말하면 믿겠는가?
이런 일은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일이고, 세상 이치로도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은 것이다.
즉,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아이를 잉태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늙은 할머니의 뱃속에서라도 아이가 자라나게 하실 것을 믿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권능은 이러한 능력이므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부활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때에 율법으로 죄 사함 받던 것을,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를 온전히 믿으면, 죄를 사해주시고 마지막 날에 예수를 부활하게 하신 것처럼, 믿는 자들도 부활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기쁨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환난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뜻하지 않은 고난과 재앙을 만나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이 짧다면 짧겠지만, 길다면 한없이 긴 여정일 것이다.
이는 각자의 삶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감정이므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여정도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때에는 청소년기에 넘겨야 하는 고난이 있고, 청년기가 되면 청년기 때에 맞아야 하는 고난이 있다. 이어서 장년기, 노년기를 맞으면서 넘어야 할 험난한 산들이 장벽을 치고 있을 때가 있다.
오늘날은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 3차 산업을 지나 4차 산업과 5차 산업으로 발전하는 등, 날로 발전하는 문화권에 놓여 있다.
특히 현대 사회는 IT(Information Technology)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뇌도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화권 속에 살면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만날 때가 많을 것이다.
쉴 새 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진들은,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단순노동으로 전락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의 고난을 두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죄 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많은 매를 맞는 환난이다.(고후 11:23~27)
고린도후서 11장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살면서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였다. 사도 바울은 어디에서 이러한 희망이 솟아나는 것이었을까?
그의 심령 안에는 영생의 샘물이 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합 3:17~18)
하나님의 사자들은 성령으로 인침 받은 영생의 기쁨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롬 5:5)
사도 바울은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여호와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행 9:3~9)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를 그의 영으로 친히 보았고, 셋째 하늘에까지 올라가 세상 사람들에게 가히 이르지 못할 비밀의 말씀도 들었다.(고후 12:2~4)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흔적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도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아무리 큰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 할지라도, 죽을 듯한 고난을 받는 순간만큼은 그 무엇을 준다 하여도 싫어할 것이다.
그렇지만, 산통을 겪는 어미가 해산하고 나면, 그 고통은 잊고 새 생명의 아기를 보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은 이러한 심령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인생의 비밀을 알고 계시므로, 영생하는 큰 기쁨을 주시려고 세상에서 잠시 받는 환난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세상에 내려와 육신을 입고 고난받는 것은, 태초 전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 천사들의 죄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타락 천사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 없는 그의 사자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온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에녹 3서)
[에녹 3서]
11. 인류 탄생
그러자 저 높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물론 지금 지옥(땅)에 있는 타락 천사들은 죄를 짓고 인간이 될 운명에 처해 있지만 내 그들을 가엾이 여겨 다시 한번 천사가 될 기회를 주려 한다.
그래서 너희들을 내가 선택하여 지옥(땅)으로 내려보내노라.
윤회의 틀을 돌고 돌아 인간으로 태어나면 너희들은 나의 말을 듣고 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처럼, 큰 고난과 핍박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세상을 사노라면, 넘어야 할 험난한 산들이 장벽을 치고 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역경은 잠시 사는 날 동안 주어진 사명이라 여기며, 묵묵히 맡은 바에 충실하다 보면 새로운 기쁨의 날도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사람들은 육신의 삶을 통하여 고난을 당하게 된다. 육신의 고난은 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소망을 이루게 하신다. 고난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연단을 만들어서 구원의 소망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이 이토록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였던 것은, 잠시 사는 육신의 죽음 뒤에 영생하는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에 구원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2023. 2. 9.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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