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문말씀은 여호와(יהוה)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하시는 말씀, 곧 하나님의 참된 증인의 말씀이다.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던 곳은, 부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살다 간 도시로 보인다.
육신의 풍요로움은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므로, 영적으로는 퇴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니,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얼음장같이 차가워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다.
공의(公義)란?
공평(公平)과 정의(正義)가 합쳐진 말씀으로,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고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차가운 공의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차가운 공의는, 그 어떤 날 선 칼날보다도 더 예리하여 사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히 4:12)
히브리서 4장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공의가 없으면 질서가 문란해지고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므로 공의는 아름다운 질서와 화평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와 같은 공의만 살아있다면, 냉랭하여 따뜻한 온기가 필요할 것이다.
2) 하나님은 공의를 가지신 동시에, 따뜻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으로 그의 백성들을 품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얼어붙은 얼음덩이를 녹이는 봄날의 햇살과 같으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신다.(벧전 4:8)
베드로전서 4장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물은, 입에서 토하여 버리듯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은 미지근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들의 생리도 그러하다. 물을 마셔도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맛도 없고 울렁거려 토하기 좋은 상태이다.
그러나 차든지 뜨겁든지 하는 물은, 물맛도 좋고 기분도 상쾌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차가운 공의가 살아있는 바탕에서, 따뜻한 사랑이 흘러넘쳐야 살맛 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사랑 안에 공의가 내재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는, 자신이 부자이고 풍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말씀하신다.
육신을 입은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벌거벗은 수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자신이 영적으로 죽게 되어 있어도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는, 대부분 육신이 편하고 물질이 풍요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불쌍하고 가련한 자신의 실상을 볼 수 있도록, 눈에 안약을 발라서라도 볼 수 있게 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불로 연단한 순금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연단하고, 늘 깨어있는 삶으로 하늘나라의 부요함을 채우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삶이 흰옷을 입은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책망하신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의 사자들에게 찾아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고 마음의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것이라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은 밝은 눈과 흰옷으로 단장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금으로 연단한 풍요로써 하늘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육신을 입고 잠시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짧은 인생의 여정을 살아가는 동안, 차든지 뜨겁든지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을지어다."
2023. 2. 27.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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