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증언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세상적 이론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고 내가 있어야 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없는데, 어떻게 신을 의지한다는 말씀인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쓰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무런 증거 없이, 이와 같은 말씀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다.(고후 12:1~4)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천사들을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는 강한 빛에 휩싸여 눈이 멀었고, 눈에 비닐 같은 것이 벗어진 후에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환상 속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실체를 체험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영적체험은 일반 사람들이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선지자와 사도들이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적은 무리들의 주관적 체험을 객관화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화할 수 없는 소수의 체험들은, 반드시 거짓일까?
존재와 인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생각하는 나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은 모태에서 태어난 후로부터 존재하게 되었고,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태어나기 전에는 그들의 영혼이 없었던 것일까?
천상의 비밀을 본 사도 바울은, 예수가 태어난 비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히 1:4~5, 롬 8:3)
히브리서 1장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중략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로마서 8장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 말씀은 천사들 중에 예수를 택하여 세상에 보내실 때, 여호와(יהוה)께서는 죄 없는 아들 예수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즉, 천사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본체라는 것과, 하나님과 동등한 아들이라는 비밀, 그리고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Cherubim)에 관한 비밀 등, 많은 것들을 밝히었다.
천사들은 모두 하나님의 본체에서 지음 받은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이므로, 하나님과 동등한 영체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도 똑같은 천사들이 없는, 독특하고 특별하게 지음 받은 하나뿐인 생명체들이다.
이를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 말씀한다.
천상에는 하나님의 본체와 동등한 천사들이 사탄(사타나엘)에 미혹에 이끌려 하나님의 품을 떠나버렸다. 그 수가 모래알 같이 많았다.(에녹 3서)
[에녹 3서]
8장, 지상의 천사들
-중략-
사타나엘은 북쪽산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의 모든 부하 천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그의 부름을 받고
온 천국의 3분의 1 가량의 천사들이 모여들었다.
사타나엘은 바닷가의 모래와도 같이
수 없는 천사들의 앞에 서서
자신의 뜻을 그들에게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만든 새로운 세계와
그 안의 생물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대 천사장 사타나엘이 아니라
신이 되기 위해 열망하는 존재
사탄이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의 힘은
바로 진화에 있다.
그 진화의 힘을 이용하면
신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으나
지고자는 그들을 죽음이라는 저주의 굴레로
영원히 묶어 벼렸다.
우리에겐 죽음이 없다.
그들에게 있는 진화의 힘도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 세계로 날아가
그들과 힘을 합친다면
우리도 진화하여 모두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모든 천사들이 동조했다.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이 사탄에게 질문해 왔다.
사탄은 일일이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며
짐승의 지식을 천사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스며들게 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속에도
자신들도 진화하여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욕심이 샘솟기 시작했고
곧 짐승의 죄악으로 장성해 갔다.
하나님은 그의 품을 떠난 타락 천사들을 하늘나라에서 쫓아내셨다.
그리고 저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의 신들(천사들)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타락 천사의 생기로 사람을 지으셨다.
이때, 타락 천사의 생기를 아담의 코에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령(혼)이 되게 하였다.(창 2:7~8, 에녹 3서)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에녹 3서]
9. 종말과 재생
-중략-
천사의 영혼을 지닌 지식의 짐승들, 그것이 내가 새로이 창조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니라
이후로부터는 잉태의 문을 열고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후에야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될 뿐, 자신의 영혼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다만, 그 비밀은 사도 바울과 같이 성령에 이끌려 하늘나라의 비밀을 본 자만이 밝힐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육신이 모태에서 자라날 때, 어느 시점에서 내 영혼이 나를 인식하게 되었는지 아는 자가 없다.
그리고 나의 육신이 죽을 때에도 동일하다. 내 영혼이 어느 시점에서 육신을 빠져나가는지 아는 자가 없다.
이러한 비밀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거하여, 말씀을 환언해 보겠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인식하게 되었는가?
처음부터 내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나라는 존재는 모태로부터 태어난 후 알게 된 것이다.
육신이 사고할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는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태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시점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언제부터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다만, 현재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인생들은 지극히 작은 지혜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작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존재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지한 자들이라고 말씀한다.
즉,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고전 1:20~21)
고린도전서 1장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은 무지한 인생들에게,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그가 살아계심을 깨우치시는 분이시다.
무지한 자들에게, 없었던 생명을 존재하게 해 주었더니, 그 생명이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왕 노릇 하려는 꼴이 우습지 않은가?
다시 말해, 물에 빠진 자를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렇다고 자신감을 잃고 나약하게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자신의 존재를 활보하라는 말씀이다.
무지한 가운데 스스로 주인 노릇하는 오만방자한 존재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여, 힘 있고 활기차게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타락 천사의 생기를 입고 태어난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죄 없는 천사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을 심판하시는 이가 예수이고 부활하게 하시는 이도 예수라는 말씀이다.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에게 모든 권세를 주셔서 마지막 날까지 다스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을 끝마치고 나면, 예수께서는 받은 모든 권세를 그의 아버지께로 다시 돌려드린다.(고전 15:24)
고린도전서 15장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죄에서 구원받아 천사로 부활하는 그날까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는 것이다.(마 22:29~30)
2024. 8. 19. 솨케드(שק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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